한국전쟁 이후로 우리가 이루어낸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인 발전은 전세계가 주목할 만큼의 엄청난 것이었다.

전(戰)후 헐벗은 나라에서 가난탈출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앞만 보고 달리며 피땀 어린 노력으로 재건한 이

나라는 전쟁에 대한 공포와 가난으로 고통 받던 아시아 변방에서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여

전히 한국사회의 큰 화두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이는 비단 젊은 세대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닌 듯 하

다. 분명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축복받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분명한데도 우리 현대인은 왜 느닷없이

엄습하는 ‘불안’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너나 할 것 없이 성공이 지상최대의 목표이자 올

바른 삶의 방식인 듯 쉼 없이 달리는 요즈음 왠지 모르게 공허함이 느껴지거나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면 한번

쯤 무엇이 문제인지 되짚어 봐야 할 시점일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불안’ 과 코이케 류노스케의 저서 ‘버리고 사는 연습’ 은 이러한 현대인의 불안에

대하여 나름 그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한다. 하나는 철학적 담론으로부터, 하나는 종교로부터의 오래된 지혜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status anxiety)’

 1993년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데뷔한 이 스위스 출신의 영국작가는 최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다양한 주제를 에세이 또는 소설로 풀어내는 알랭 드 보통은 일상의 소소한 부분까지

면밀히 들여다보며 철학적인 주제로 투영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작가다. 그가 2004년 발표한 이 에세이는

현대인이 늘 마주치고 있는 일상의 사소한 대화나 행동 속에 숨어 있는 불안심리를 들춰내며 심도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사랑과 존중에 대한 결핍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하는 현대인의 불안이란 건강에 대한 걱정, 가족의 안전에 대한 염려, 배고픔으로 인한 곤

궁 같은 이전 인류에서 일상적으로 반복되던 불안이 아닌 현대인에게 새롭게 발생한 불안, 즉 ‘지위에 대한 불

안’을 말한다. 누구나 가끔씩 또는 자주 인간관계 속에서 자기자신이 정말 사랑 받고 존경 받고 칭찬 받을 만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더러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불안심리로 이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가가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상황이 흥미롭다. ‘불안은 무엇보다도 불황, 승진, 퇴직, 업계 동료와 나

누는 대화, 성공을 거둔 걸출한 친구에 관한 소문 등으로 유발된다. 그러나 질투를 고백하는 것과 마

찬가지로 불안을 드러내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경솔한 행동이며, 따라서 이 내적인 드라마의 증거는

흔치 않지만 보통 어디에 몰두한 듯한 눈길, 부서질 것 같은 미소, 다른 사람의 성공 소식을 들은 뒤

이어지는 유난히 긴 침묵 등으로만 간간이 나타날 뿐이다.’

 이러한 내적인 드라마는 남에게 심지어 자신에게도 잘 간파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존

중 받고 사랑 받지 못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독성 강한 걱정에 빠져 하루 종일 허우적대도록 만든다. 우리가

이렇듯 자신의 위치에 휘둘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

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사람들이 좀 더 높은 지위와 경제적인 성공을 통해, 또는 자신이 가진 남보다 나

은 소유물을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더 사랑 받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욕구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매우 애석하면서도 진리에 가까운 사실은 이러한 높은 지위를 얻기는 어렵고 또한 계속적으

로 유지, 발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모든 욕구와 갈망이 그러하듯 자신의 지위에 대한 욕심

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점점 커져만 가고 그에 비해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자신의 지위는 늘 불안 할 수 밖에 없

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속물근성

“우리와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는데 부를까요?”

“안되지 얘야, 우리와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인 사람들은 우리가

사귈만한 사람들이 아니란다.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은 오직

우리와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뿐 이란다!”

 

 영어에서 속물(Snobbery) 이라는 말은 ‘sine nobilitate’, 즉 ‘작위가 없음’을 뜻하는 일반인과 귀족을 구분하

는 관행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 자체를 동일시 하는 근성을 말한다. 특히나 현

대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이러한 속물 근성은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지위의 향상을 위한 야심을 유도하게 마련

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지위의 상징들을 보여주기 위해 좋은 직업을 가지고 값비싼

물건들을 사들이게 되는데, 이를 두고 저자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불안에 찬 몸부림이라 간주한다. ‘보통 속물

근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독립적인 판단을 할 준거가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그러기에 비판 없이 세대를 따라 물려져 내

려오며 세상에 전파된다. 그리하여 세대를 아울러 사회적, 경제적으로 낮은 지위가 반드시 무가치하

고 무시당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일종의 내적인 평안은 소원한 일이 되어버린다.’

“Men talk about women, sports and cars”

“Women talk about men inside sports cars”

 광고에 등장하는 그럴싸한 캐치프레이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고급 자동차, 보석, 진귀한 물건들을 지닌 주인

공들이 사랑 받고 존중 받는 것을 보며 우리도 저런 것들을 가지게 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

각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다시 말해 존중 받는 느낌을 얻어 행복해지기 위한 지위의

상징들, 예를 들어 고급스러운 자동차와 명품을 돈들여 사들이고 나서 우리가 내심 기대하는 행복지수는 아래

와 같은 그래프 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짧게는 수주 또는 수개월 이내에 이러한 행복은 일상으로 편입되고 무감각해져 실제적

으로 우리가 곧이어 깨닫게 되는 행복지수의 그래프는 아래와 같이 나타나게 된다.

 아무리 최고급 자동차라고 하더라도 인간관계에서 주는 만족감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다. 집에서 싸움을 하거나 친구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뒤에 최고급 스포츠카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사

실은 실제로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남들로부터의 사랑과 존중의 결

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인생은 하나의 불

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

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

의 목표가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능력주의

 불과 몇 세기 전인 봉건시대의 사람들은 귀족과 평민, 지위가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로 구분 짓

는 높은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평생 동안 지위의 변화란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신분상승의 벽을 철폐

하고자 나타난 현대 자본주의의 (얼핏 보기에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구는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지고 누

구나 그것을 잘 활용한다면 지위의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 (최근엔 실제로 그런지도 의문이지만)’ 이다. 봉건사

회 이전에는 농사를 짓고 생산을 하던 농민들의 존재가 비록 낮은 지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귀중한

존재이며 심지어 깨어 있는 몇몇 귀족들로부터 존중 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주어

진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낮은 지위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곤궁이라는 괴로움과 더불어

심지어는 노력하지 않은 나태한 실패자라는 도덕적 잣대까지 들이대게 되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로 인

해 아이러니하게도 불평등 사회에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만큼은 평생에 걸쳐 주변인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에 있으므로 자신의 불행을 느끼지 못했던 반면 현대인은 누구든지 기회만 잡을 수 있으면 남보다 더 뛰어

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더 존중 받고 사랑 받으리라는 믿음에서 불안이 싹트

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경쟁을 통한 사회적, 자아적 발전이 핵심적 가치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행복이란

더 이상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가 되어버렸기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유동적인 지위

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적인 불안감을 생산해낼 수 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