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 월드컵을 결국 실패로 마무리한 홍명보 감독의 '축구 철학'은 의리 축구'라는 조롱 속에

수많은 국민들의 원성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만 되돌려 보면 그는 'One Team, One Spirit,

One Goal'이라는 축구철학을 통해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축구의 차새대 리더로서 모든 

국민들이 찬사를 보냈었습니다. 그렇다면 홍명보 감독의 진정한  '축구 철학'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접하는 수없이 많은 말들에 '철학'이라는 말은 접미어처럼 붙어있습니다. '정치 철학' '경영 철학'

'축구 철학' '개똥 철학' 등등등 정말 아무렇게나 쓰여져서 그 의미가 너무 낡고 진부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이 '철학'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40년 넘게 살아오며 이과적 지식으로만 학습해 온 저에게 '철학'이라는 말은 고등학교 윤리 과목의 암기해

할 대상들(수많은 철학자와 그들의 철학을 매칭하기 위해 억지스런 암기법을 사용하며..) 일 뿐이었으며,

대학의 철학과란 아주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괴짜 같은 친구들이나 그다지 경제적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보해미안 같은 친구들(왠지 이 생각에는 뮤지션 신해철이 많은 영향을 준 거 같다, 한때 그가 만들었던 프로

젝트 그룹 '비트켄슈타인'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프랑켄슈타인을 비틀어서 이름을

지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비트켄슈타인'은 언어 철학을 주장한 20세기 현대 철학의 대가였다. 신해철을 디스

하는 것처럼 보이나 난 사실 그의 음악과 사상의 팬이다.)이 가는 곳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제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가 되다 보니 '삶과 죽음', '나와 주변인' 그리고 '이성과 감정' 등 이전에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던 주제들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결국 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들은 '철학'이라는 인류 최고(最古)의 학문에서 많은 철학자들이 질문하고 논쟁하고 답을 찾고 있었

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저의 무지와 무식을 한탄하며 철학에 대한 책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철학'이란 저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였으며, 입문서라고 하는 책도 이해하기 어렵기

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와중 작년 말 책 관련 팟캐스트에서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와 <라이도헤드로 철학

하기>라는 책에 대하여 듣게 되었습니다.

 

1999년 개봉되어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킨 영화 <매트릭스>와 영국의 위대한 그룹으로 수없이 많은 명곡을

만든 <라디오헤드>는 저와 청춘기를 함께 보낸 좋아하는 것들 이었으므로  이를 통해 철학에 좀 더 쉽게 다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먼저 소개할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The Matrix & Philosophy>라는 책은 영화<매트릭스>가 담고 있는 철학

적 의미에 대하여 17명의 철학 교수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기술한 15편의 원고를 모아 발간된 책 입니다.

저자 중 가장 눈에 띄는 철학자는 유고 태생의 '슬로보예 지젝'으로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며,

2013년 경희대 석좌교수로 초빙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습니다. 지젝이 <매트릭스>는 철학자들의 로르샤

흐 검사(Rorschach test: 잉크 얼룩이 어떻게 보이는지 해석하여 사람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검사)가 되었다

라고 한 것처럼 이 책에서 바라보는 관점에서 따라 고대의 소크라테스부터 현대의 자크 라캉까지 각자의 관심

분야의 틀을 통해 이 영화의 철학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지젝의 글은 이 책의 마지막 '<매트릭스>, 가해자의 히스테리 또는 새도매저키즘의 징후'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이전의 14개의 글을 모두 함축한 듯 하면서도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볼 수 있었으나 사실 저로서는

모든 내용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그냥 겉으로 보면 SF와 액션이 잘 조합된 스타일리쉬한 블록버스터 영화로만 보이는 <매트릭스>에 담겨있는

철학적 의미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의 인문학적 지식 부족

에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매트릭스>에는 어떤 철학적 의미들이 있을까요? 매트릭스의 전편에 걸쳐있는 가장 기본적인 틀은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매트릭스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가상 현실 이라는 점 입니다.

실제 인간들은 매트릭스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대상으로 배양되고 있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들은

우리의 뇌를 지배하는 프로그램에 따른 환상일 뿐입니다. 주인공인 네오는 모피어스가 내민 빨간약을 선택하게

되고 '마음의 감옥'을 벗어나 '진실의 사막'을 직시하게 됩니다.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가 환상일 수도 있다는 가정에 따라 일상의 세계를 의심하는 철학적 입장을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회의론이라고 합니다. 데카르트라면 가장 먼저 떠오는 말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것은 방법적 회의에 따른 결론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 입니다. 데카르트는 삶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들을 배제해

나가는 방법을 사용하였고, 결국 의심해 보고 또 의심해 봐도 이러한 의심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이를 위와 같은 제1명제로 나타내게 됩니다.

이렇게 거짓된 허상을 벗어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네오의 모습에서 널리 알려진 플라톤 철학의 '동굴의 우

상'도 엿볼 수도 있으며, 그 외에도 칸트의 철학 그리고 사르트르, 카뮈,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실존주의 철학뿐

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유물론까지 철학자에 따라 다양한 질문과 답변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트릭스가

품고 있는 철학적 담론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면에서 본다면 매트릭스는 기독교적 주제가 기본 틀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네오(Neo)라는

이름은 철자를 거꾸로 한다면 '그(One)'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약속된 구원자'의 역할이며, 그의 동료이자

연인인 '트리니티(Trinity)'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의미합니다. 매트릭스를 벗어난 최후

의 인간들의 도시인 시온(Zion)은 구약성서의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저항 대원들이 타고 다니는 함선인 네브카

드네자르호는 성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기억할 수 없는 꿈이 해몽을 구하는 바빌로니아의 왕 '네브카드네자르

(Nebuchadenezzar)'를 뜻 합니다.

 

또한 이 영화에는 불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등의 다원적 종교의 개념 또한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

이 흥미롭습니다. 불교에서 중요한 상징인 '거울-반영'의 이미지가 영화 곳곳에서 의미 심장하게 사용되고 있으

며, 이는 매트릭스와 컨스트럭트에서만 거울과 같은 선글라스를 사용하는 네오와 모피어스를 비롯한 대원들의

모습, 빨간 약을 먹은 후 거울로 빨려 들어가 현실의 배양 용기에서 깨어나는 모습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교적 심상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은 예언자를 찾아가는 아파트에서 염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동자승의 대사인 "숟가락은 없다"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이 모든 철학적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는 대중 영화로서 재미있으며, 1편이 나온

(1995년)지 15년이 지난 현재(2014년) 보아도 스타일리쉬하고 매력 넘치는 영화라는 점에서 최고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남매(원래 형제였으나 형인 '래리 워쇼스키'가 성전환 수술

을 하며 '라나 워쇼스키'가 되었음)가 2012년에 제작한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대비되는데, 윤희와 환생 같은

철학적 메세지가 가득한 6개의 독립적이면서도 연관된 내용을 큰 스케일과 172분이라는 긴 런닝 타임에 담아

놓았지만 대중에게 어필하는 영화적 재미와 매력은 담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묻혀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앞에서 말한 철학자들의 '로르샤흐 검사'라는 표현처럼 하나의 영화에 대하여 철학

교수들 개인의 전공이나 관점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매우 다르다는 점(당연히 다양한 의견을 담는 것이 이 책의

의도였겠지만)과 그로 인하여 철학에 문외한인 제가 철학의 다양한 주제들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

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문에서 이 책을 엮은 윌리엄 어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이 책은 철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마음 속의 가시(Splinter in the mind, driving ud mad)"를 지녀본 적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이 당신의 철학 공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은 저에게도 철학 공부까진

아니더라도 철학에 대한 관심과 지적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분명 그 의미를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겠

습니다.